
치료수기01
질문 많은 우문현답형 환자 보호자와 신뢰의 의료진
2025년의 나의 모든 좋은 운을 좋은 의료진을 만나는 것으로 다 썼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의 우매한 질문들에 국립교통재활병원의 의료진들은 현명하게 답해주었다. 우문현답의 연속과 인내의 재활로 누워서 입원했던 환자가 현재는 걷고, 말하고, 농담도 하며 웃고 있다. 본격적 글에 앞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평온했던 가족의 일상이 갑자기 무너진 진단명.
왼쪽 바닥핵 뇌내출혈로 인한 오른쪽 편마비.
2025년 11월.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쓰러지셨다. 평소 혈압 문제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셨던 분이시라, 온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 집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갔고, 중환자실에서 10일 동안 급성기 치료 후, 운 좋게 국립교통재활병원으로 바로 입원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입원은 사설 구급차에 실려서 누운 채로 이루어졌다. 입원 당시 아버지는 앉아 있는 것은 하루에 몇십 분밖에 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어야 하셨다.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기에 기저귀를 사용해야 했고,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과 본적지의 주소만 기억하고, 대부분의 단어를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께서는 다행히도 화장하지 않은 가족들의 얼굴은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 당시 걱정과 과로로 퀭해있던 나는 선크림에 립밤, 다크서클을 가리는 정도의 사회적으로 최소한 나는 아프지 않다 정도로 보이는 얼굴로 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가야 했다.
면회는 주말만 가족들에 한해서 허락되었다. 이때만 해도 과연 아버지께서 스스로 걷고 제대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언어가 회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짙은 의심 속에서 그저 병원분들께서 하자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보호자가 24시간 간병인으로 옆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병원에서 어떤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었었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은 개인 블로그의 후기라던가 인터넷에 많은 자료는 없었지만, 국립재활원 홈페이지에( 장애와 건강 다(多)있소 (nrc.go.kr) ) 제2기 재활의료기관으로 선정되어 있던 것을 보고 찾았던 병원이었기에 병원 시스템과 의료진을 일단 믿고 따랐다.
환자의 재활 의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환자가 외부와의 접촉을 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었기에 병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병동 간호사실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배정된 곳은 42병동. 간호사실에서 전화로 상세히 알려주셔서 가족들은 아버지와 떨어져 있지만, 안심하고 아버지의 상태와 치료에 관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무거웠던 마음이 약간의 위로를 받고는 했다. 분명히 내가 겪었던 다른 병원 간호사분들과는 에너지가 달랐다.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고, 계속되는 보호자들과의 통화로 본인들도 몸도 정신도 지치실 만도 한데, 항상 밝게, 친절하게, 힘차게, 그리고 정확하게 안내를 도와주셨다. 42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은 보호자의 눈과 귀,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나 재활선생님들께 보호자들의 질문과 의견을 전해주는 입이 되어 주셨다. 특히 입원 초기에는 보호자들도 처음 겪는 일들이 많고 놀래있는 상태이기에 말 그대로 멘탈 붕괴 상태이기 쉽다. 툭하고 치면 눈물을 하루 종일 쏟을 수 있을, 막 깨질 것 같은 금이 가 있는 유리 같은 상태. 그런 상태의 보호자들에게 42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은 어떤 질문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시고, 어떻게든 환자와 보호자들을 도와주시려고 애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힘든 시기에 도움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한데,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글로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한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담당 의사선생님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상태에서 치료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간호사실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받고 있었다. 치료를 위한 이런저런 테스트 후에 담당 교수님께서 전화상으로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아버지의 담당의는 원준희 교수님이셨는데, 의료적 지식이 미미한 보호자가 알아듣기 쉽게, 그리고 아주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래서 뭐가 왜 어떻게 필요한 것인지 이해를 했고, 또한 감탄을 했다. 어려운 것을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차분히 설명하는 능력을 갖은 담당의를 만난 것을 2025년 아버지의 최고의 복이라고 여길 정도로. 그리고 그간 담당의가 정확히 어떤 분인지 알 수 없던 상황에서 느껴야만 했던 불안감도 해소가 되었다.
그렇게 치료 방향과 목표가 설정이 되었고. 재활 선생님들이 정해졌다. 처음에 너무도 절망적인 아버지의 상태를 봐서는 과연 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치료들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계속 갖고 있었으나, 매주말마다 조금씩 호전되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병원 시스템과 의료진에 대한 믿음은 점점 깊어졌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약의 종류와 쓰는 약의 용량, 재활치료 시간 외의 재활과 관련한 질문들이 생겨났었다. 다행히 좋은 타이밍에 원준희 교수님과 대면 면담이 있었고, MRI 결과를 같이 보면서 들었던 설명들은 환자 상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교수님께서 얼마나 바쁜지는 짐작이 가지만, 나는 보호자로서 의무이자 권리를 다 하기 위해 면담 때 열심히 질문들을 했다. 자칫 의료진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다행히도 원 교수님께서는 환자 보호자들의 절박함을 잘 이해하고 계셨다. 본인도 잠을 잘 못 주무시는 상황인 것인지 퀭하니 지쳐계셨는데도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대면 면담 때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리고 매번 설명하는 모습 보면서 감탄을 한다. 설명들은 것을 집에 돌아와 따로 찾아서 공부하다 보면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짧은 시간에 설명할 수 있었다고?!라며 재차 감탄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원 교수님께서 담당이 되어서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보호자의 말을 정말 잘 들어주신다. 그리고 보호자의 관찰 내용과 대화 안에서 검사 결과나 잠깐의 진료로는 알 수 없는 부분도 찾아내어 치료 방향을 정할 때 참고를 하셨다. 솔직히 똑똑한 행동이기도 하다. 주말마다 몇 시간씩 환자를 보호자들은 관찰을 하니까. 의사 본인이 모든 환자들을 그렇게 관찰할 수는 없으니까. 환자를 관찰하고 의사에게 알려주는 일은 보호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 교수님께서는 매번 현실적 목표를 설명해 주시는데, 이게 또 보호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좋다. '더 지켜봅시다.'라고 밑도 끝도 없이 말하는 의사들이 태반인데, 원 교수님께서는 '이러이러하게 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최소한 이런 상태까지 도달하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알려주면 보호자도 환자도 이상한 불안감이나 기대를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니 우리 교수님 방식의 가이드 참 좋다. 그리고 외래로 다른 병원에 진료를 보러 나갈 때 써주시는 진료의뢰서를 꼼꼼히 잘 써주셔서 좋다. 진료의뢰서를 받아보시는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들께서 칭찬하셨었다. 진료도 잘 하셨고, 치료 방향도 잘 잡으셨고, 실제로 환자 상태도 호전됐다고, 좋은 의사 선생님이시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의 꽃. 재활치료사 선생님들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운 좋게도 아버지와 정말 잘 맞는 재활치료사 선생님들을 만났다. 진짜로 아버지는 2025, 2026년 모든 좋은 운을 좋은 재활치료사 선생님들을 만나는데 썼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 분, 한 분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글의 형태를 빌려서 짧게나마 전하고 싶다.
우선, 1:1 치료 허재원 선생님. 진짜로 인내의 연속인 치료를 반복하고 계셨다. 예전에 시간 때가 맞아서 재활 치료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볼 때 숨이 넘어갈 정도로 참고 또 참으면서 차분하게 집중력을 읺지 않고 아버지 뒤에서 따라가며 한걸음 한걸음 체크하고, 넘어질 것 같이 기우뚱하는 순간 바로 잡아내셨다. 재활 치료 때 의료진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고가 낙상. 공들여서 낫게 해 놨는데, 환자의 순간적 삐끗함에 넘어져서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발생하면 안 되기에 치료사 선생님의 집중력은 정말로 중요하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허재원 선생님께서는 항상 몸의 위치를 맞추는 교정을 하고 나서 몸이 바르게 정렬된 상태로 몸을 움직이는 치료를 한다고 하셨다. 몸의 정렬이 맞지 않는 상태로 열심히 재활치료를 해본들, 그런 재활치료는 나쁜 자세의 반복으로 잘못된 걸음걸이와 근육을 만든다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근육 모양이 잡히기 시작하던 때에는 환자 혼자 걷는 운동을 못 하게 하셨었다. 매번 최선을 다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환자가 100%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치료사를 만났기에 현재 아버지의 호전 정도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퇴원 후에 통원 치료 시에도 계속해서 아버지를 봐주셨으면 좋겠지만, 허 선생님께서는 입원 환자만 치료하신대서 너무 아쉽게 생각한다. 진짜 좋은 재활 선생님이시다.
언어치료 원동란 선생님께서는 엄격하게 치료를 진행하셨던 모양이다. 다른 환자들 중에는 선생님의 엄격함에 숨는 환자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버지의 경우에는 오히려 선생님의 엄격함이 더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이 어찌 보면 고립형(?) 힘든 재활로 유명하다보니, 환자가 세상 정보를 접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 주말마다 아버지께 그 주에 읽어볼 만한 기사 몇 개를 인쇄해서 갖다 드리고는 했었다. 그 기사들을 또박또박 읽어서 발음 연습도 할 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자는 취지로 했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원동란 선생님께서 따로 기사를 챙겨주고 계신다고, 더 이상 내가 기사를 챙겨가지 않아도 된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의료적 지식이 있으신 분이 고르는 기사가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원 선생님께 감사했다. 환자에게 나쁜 자극이 될세라 기사를 읽고, 판단하고, 세상의 부정적 자극으로부터 고르는 일도 꽤나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라서 원동란 선생님께서 신경 써주셨구나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 덕분에 오른손잡이인 아버지께서 왼손으로 글자를 또박또박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수기 공모전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왼손으로 글을 쓰신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상상 못 할 것이다.
작업치료 송은희 선생님은 우연히 복도에서 뵈고 인사드린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밝고 또랑또랑하시던지 환자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심어주셨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송 선생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발병 전에 취미로 쓰셨던 시를 함께 읊으면서 작업치료를 진행하셨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환자가 몸이 뜻대로 안 움직여지고 활동량이 적어지다 보면 정신적으로 위축이 되거나 우울해지기 쉬운데, 그러면 의지도 약해지기 쉽고 몸도 같이 위축되고 힘든 재활치료를 버틸 정신력을 잃기 쉬워진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 펼쳐지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인생에서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던 때에 쓰인 시들을 함께 읊는 것으로 그때의 긍정적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도움을 준다. 덕분에 힘든 재활도 아버지께서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재활 내용 자체는 일상생활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라, 중요했다. 환자 스스로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쓰지 않던 왼손으로 수저 사용을 하고.. 아버지께서 예전에는 모든 행동이 어색하고 엉망이었지만, 꾸준한 치료로 많이 익숙해지셨다고 하셨다.
인지치료 이남우 선생님께서는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차신지, 목소리의 힘 덕분에 아버지께서 정신이 번쩍번쩍 났다고, 환자 본인도 기운이 난다고 하셨다. 재활은 재활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재활 선생님들의 태도와 표현 방식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로봇 치료 이재선 선생님께서는 직접 손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바르게 걷는 모양을 잡아주셔서 막연하게 말로만 듣고 걷는 법을 이해하기보다는 실제로 체득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뇌가 다치면서 걷는 법을 아예 잊어버린 환자를 처음부터 시작하여 결국에 제대로 걷겠끔 만드는 것이 재활의 목표이기도 하다. 로봇 치료라는 것이 어찌 보면 로봇에 매달려서 의지한 채로 걷다 보니 생각 없이 걸을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을 옆에서 유심히 보고 계시다가 잘 잡아주셨던 모양이다.
재활치료사 선생님들 외에도 제대로 된 재활 계획을 짤 수 있도록 평가를 도와주셨던 선생님들, 환자 보호자들이 외래 때 들고나갈 서류들을 잘 챙겨주시고 금전적 이슈들에 관해 친절히 안내해 주시는 원무과분들, 그리고 언제나 쾌적한 환경을 위해서 청소에 신경 써주시고 계신 분들, 안전과 데스크 안내를 도와주시고 계신 시큐리티 분들 등등. 직간접적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재활이 원활하게, 효율적으로, 잘 진행될 수 있었다. 한 분 한 분 인사드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렇게나마 글로써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이 치료 수기는 환자인 아버지의 권유로 쓰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신 후, 작든 크든 웬만하면 부모님께서 원하는 일들을 들어드리려 노력한다. 이제야 정신 차리고 효도라는 것을 해보겠다고.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을 계속 써보는 것으로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다. [ 2부에 계속, 언제 올릴지 모르겠다는게 함정. ]